공실은 준공 후에 생기지 않는다. 설계 단계에서 이미 결정되어 있다. 어떤 층고, 어떤 전면, 어떤 동선을 가진 공간인지가 정해지는 순간, 그 공간에 들어올 수 있는 임차인의 범위도 함께 정해지기 때문이다. 준공 후의 공실은 결과일 뿐, 원인은 언제나 도면 속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순서를 바꾼다. 도면이 확정되기 전에 MD 구성을 먼저 그린다. 1층에 어떤 업종이 들어와야 위층의 가치가 올라가는지, 그 업종이 요구하는 물리적 조건 — 층고, 전기 용량, 배기, 하역 동선 — 은 무엇인지를 설계에 반영한다. 카페가 들어올 자리에 배기 덕트가 없고, 식당이 들어올 자리에 층고가 모자란 건물을 우리는 너무 많이 봤다. 그 건물들은 임차인을 고를 수 없게 된다. 들어올 수 있는 업종이 들어올 뿐이다.
그런데 테넌팅은 조건을 맞추는 일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테넌트는 세입자가 아니라 그 공간의 첫 번째 동료다. 우리는 작은 움직임이지만 진실된 방향을 가진 사람들을 모으고 싶어 한다. 자기 일에 신념이 있는 가게, 오래 할 생각으로 여는 가게, 거리에 무언가를 더하려는 사람들. 작은 것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발걸음을 향하게 만든다.
한 가게의 힘은 임대료 그 이상이다. 첫 번째 테넌트는 그 거리의 인력의 성질을 정한다. 좋은 가게 하나가 낙차가 되어 사람을 끌어오고, 그 흐름이 두 번째, 세 번째 가게를 부른다. 반대로 아무 업종이나 채워 넣은 1층은 거리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MD 구성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의 문제다 — 누가 들어오느냐가 그 자산의 5년 뒤를 결정한다.
이 판단은 금융에서도 증명된다. 임차인이 정해진 건물은 다르게 평가받는다. 준공 시점의 렌트롤은 감정평가에 반영되고, 감정가는 대출 조건을 바꾸고, 안정된 임대차는 매각가를 지탱한다. 선임대 확약 한 장이 금리 조건을 바꾸기도 한다. 공실 리스크가 사라진 사업의 자금은 다르게 움직인다. 테넌팅은 마케팅이 아니라 개발의 일부이고, 어쩌면 금융의 일부다.
준공 후에 임차인을 찾는 개발과, 임차인과 함께 준공을 향해 가는 개발. 두 건물은 같은 날 문을 열어도 다른 시간을 살게 된다. 우리는 후자를 택한다 — 건물이 아니라 거리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