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건물을 두고 세 사람이 다른 문서를 본다. 시행사는 수지표를 보고, 건축가는 도면을 보고, 시공사는 공정표와 물량내역서를 본다. 문제는 이 세 문서가 서로를 읽지 못한다는 것이다. 수지표에는 공간의 질이 없고, 도면에는 원가가 없고, 내역서에는 의도가 없다. 번역자가 없는 프로젝트에서 건물은 세 번, 따로 지어진다.
분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보면 전부 합리적이다. 시행사에게 설계는 인허가를 통과하기 위한 납품물이다 — 이 업계에 "허가방"이라는 멸칭이 존재하는 이유다. 최소 비용으로 허가 도서를 만들어주는 설계사무소,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발주하는 시행사. 건축가에게 수지는 자기 계약 범위 밖의 일이고, 시공사는 도면의 의도가 아니라 물량을 산출한다. 각자의 계약서 안에서 모두가 합리적인데, 그 합리들의 합이 아무도 원하지 않은 건물을 낳는다.
그리고 준공된 건물이 이상할 때, 셋은 서로를 가리킨다. 설계가 비현실적이었다, 시공이 도면대로 안 됐다, 예산이 애초에 부족했다. 전부 맞는 말이라는 게 이 구조의 진짜 문제다. 발주 구조가 책임을 3등분하는 순간, 결과에 대한 책임은 0이 된다. 실패한 건물에는 언제나 범인이 없다.
이 분리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VE — 밸류 엔지니어링이라 불리는 단계다. 이름은 가치공학이지만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대개 가치의 절삭이다. 예산이 어긋나면 도면에서 돈이 되는 것부터 지운다. 외장재의 급을 낮추고, 층고를 줄이고, 디테일을 뭉갠다. 건축가가 그린 것과 준공된 것 사이의 간극은 대부분 여기서 벌어진다. 문제는 지워진 것들이 하필 사람이 그 공간을 좋아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라는 점이다 — 그리고 그 손실은 준공 후 임대료와 공실로, 수지표가 가장 아파하는 자리로 돌아온다. 디자인을 깎아 원가를 맞춘 대가를, 운영이 평생 지불한다.
반대의 구조도 존재한다. 기획과 설계와 운영을 한 몸에 붙여놓은 회사들, 자기가 지을 건물을 자기가 그리고 준공 후에도 자기가 운영하는 디벨로퍼들. 이들의 공통점은 도면 한 장을 수지의 언어로도, 운영의 언어로도 동시에 읽는다는 것이다. 층고 30센티가 어떤 임차인을 부르는지, 외장의 급이 5년 뒤 임대료를 어떻게 지탱하는지가 설계 단계의 대화에 들어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자리도 여기다 — 수지표와 도면과 공정표를 한 테이블에 놓고, 세 언어를 통역 없이 오가는 것. 그것이 시행이라는 업의 본래 정의라고 믿는다.
건물은 계약서들의 합이 아니라 하나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우리 업계는 하나의 결과물을 만드는 구조가 아니라 세 개의 계약을 이행하는 구조로 일해 왔다. 당신이 아는 좋은 건물을 떠올려보라 — 그 건물은 몇 개의 언어로 지어졌는가. 그리고 그 언어들은, 서로 대화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