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도시론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준공식 사진에는 시행사와 시공사가 서 있다. 그 공간을 살아갈 사람은 그 사진에 없다. 분양은 끝났고, 수지는 닫혔고, 업계의 기준으로 그 사업은 성공했다. 그리고 몇 년 뒤, 그 건물의 1층은 불이 꺼져 있다.

우리는 그런 거리를 안다. 개발은 되었지만 골격만 남은 상권. 완판된 상가의 텅 빈 복도. 한 번 왔던 사람들이 다시 오지 않는 곳. 이 건물들은 실패한 것이 아니다 — 애초에 사람을 위해 설계된 적이 없을 뿐이다. 전용률을 극대화하고, 잘게 쪼개 팔고, 어디서나 같은 평면을 찍어낸다. 수지표에는 "사람"이라는 항목이 없다. 분양 완료가 성공의 정의인 업에서, 준공 다음 날부터의 시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도쿄 시부야에 미야시타 파크가 있다. 1966년에 만들어진 낡은 입체공원이었다. 시설은 노후했고, 사람들이 피해 다니는 장소가 된 지 오래였다. 흔한 답은 철거 후 상업시설이었을 것이다. 공원을 지우고 연면적을 뽑는 것 — 우리가 아는 그 공식.

그들은 반대로 했다. 공원을 지우는 대신 옥상으로 들어올렸다. 그 아래에 리테일을 짜넣고, 한쪽 끝에 호텔을 세웠다. 2020년에 다시 열린 이 330미터의 건물은 위는 잔디와 스케이트장이 있는 공원이고, 아래는 거리를 향해 열린 상업이며, 1층 골목에는 작은 술집들이 밤을 만든다. 공공은 사라지지 않았고, 수익은 성립했다. 시부야역에서 하라주쿠로 걷는 흐름 위에서, 목적지가 아니라 머무는 통로가 됐다.

미야시타 파크가 증명한 것은 단순하다. 수익과 사람은 제로섬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그 반대다 — 사람이 머물고 싶은 공간이었기 때문에 임대료가 성립했고, 수익 구조가 견고했기 때문에 공원이 유지된다. 사랑받는 공간의 조건은 착함이 아니다. 오래 성립하는 구조다. 보장된 수익 위에서만 지속성이 나오고, 지속성 위에서만 공간은 사랑받을 시간을 얻는다.

그래서 우리는 개발의 성공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양 완료가 아니라, 준공 5년 뒤의 저녁에 그 거리에 불이 켜져 있는가. 사람들이 이유 없이 들르는가. 우리가 짓는 모든 공간에 그 질문을 먼저 놓는다. 그리고 같은 질문을 업계에 돌려놓고 싶다 — 지금 어디선가 올라가고 있는 그 건물의 5년 뒤 저녁은, 누구의 책임인가.